화엄사 흑매화
흑매..
붉은 매화가 홍매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가나
너무 붉어 흑매라고 한다니 좀 심한 뻥이 아닐까? 하고
별 기대없이 다가섰던 화엄사 각황전 곁의 붉은 매화를 만나던 순간의 놀라움을 잊지못한다.
뒤로 지리산 노고단을 두르고, 장중해 보이는 화엄사와 고색창연한 각황전,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석탑, 석등 사이로 붉디 붉은 매화가 눈에 번쩍 들어왔다.
곧이어 울렁거릴 듯 깊고 짙게 전해지는 향내음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흑매라..
붉은 색감을 넘어 마치 금방 뿜어져 나온 핏빛 같아 보이니
누가 지었는 지 모르나 참 절묘한 이름이다.
화엄사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홍매..
이 꽃나무 한 그루마저도 혼을 빼앗는데 흑매를 만나게 되면 이것은 사실 맛배기일 뿐..
화엄사 각황전 앞 경내에 들어서면 눈에 띄기 시작하는 흑매..
각황전, 석탑, 석등들 하나하나가 귀한 보물들인데도 이때에는 악세서리에 불과해진다..
흑매는 점점 사람들의 발걸음을 빨아들이는 레드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할 말을 잃게하는 선연한 빛..
고찰과..
석탑과 잘 어울리는 흑매..
부처님께 아름다운 꽃과 향을 바치려고 심었는가?!
300여년을 피웠다니 놀랍다..
고운 나무 한 그루가 전국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대단한 카리스마..
살랑거리는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꽃과 향, 게다가 풍경소리까지..
여기는 인간세계가 아니다..
장구한 세월을 버틴 갈라지고 비틀린 고목에서 피운 꽃들이라서 한 송이, 한 송이가 다 귀해 보인다..
간절한 기도, 쉽게 풀릴 것 같은 염원..
극락의 세계인 듯한 착각..
아름다운 흑매를 렌즈에 담고 싶어하는 진사들의 열정 앞에 우아하고 고결한 포즈를 취하고 서 있다..
이 모습, 이대로 이 속에 시간이 정지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주변을 돌며 자꾸 셧터를 누른다..
그 순간이 최대의 몰입이자 아름다움을 수확하는 기쁨들이다..
사진보다는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들은 오래 묵을 수록 아름답고 깊어지거늘..
한 켠에서 초라하게 몸을 사리고 있지만 결코 뒤지지않을 고매한 청매 한 그루..
절정의 고조된 기분을 입구의 홍매로 진정시키고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