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 오름길에서..
나 홀로 산행을 할 수 있으면 기꺼이 지리산으로 가는 것은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이자, 취미이고, 또한 내 마음 속에서 명령받은 과업이기도 하다.
산으로 들어가는 깊이나 높이가 클수록
내 마음 속으로 더 깊게 들어오는 산...
지리산...
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온 듯, 아니온 듯 다녀오는 것보다
발이 부르트도록 남겨지는 발자국, 땀과 쓰디쓴 고통으로 온 몸이 신음소리를 낼 때에야
비로소 내 마음 속으로 깊숙히 들어온다.
오늘 컨셉은
늦게 출발,
혼자,
천천히,
길지않은 코스를
여유작작거리며 다녀오는 것이다..
10시반에 백무에서 오르기 시작
참샘, 장터목을 거친다..
지리산신의 가호였던가?!
도착해보니 전처럼 일찍 서둘렀더라면 소나기를 홈빡 맞았을 듯했다.
한 줄금 소나기를 맞은 초록들 위에 맑은 햇살이 내리고 있었고
그 아래 숲 그늘의 싱그러움은 춤이라도 출만큼 신선했다..
구름이 가득 머물고 있는 멀리 능선 위의 신비로운 세상을 꿈꾸며 가볍게 올랐다..
가뭄으로 타들어가던 초목들이 새벽에 내린 비로 목을 적시고 즐거운 표정이다..
초록보다 더 맑고 신선한 초록..
바위떡풀.
삿갓나물..마치 우주에서 날아온 꽃 같다.
바위틈을 좋아하는 금마타리의 고고함..
고도를 높이니 자주솜대들이 축제이다..
두루미꽃
눈개승마가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있다..
북선점나도나물
장터목까지는 초목, 들꽃들과 어울렁 더울렁거리는 초록숲길이라면
그 다음부터는 하늘 아래의 장쾌한 조망들이다..
언제 보아도 주술적이고 신비스러움을 주는 제석봉..
나서부터 죽어 가루가 될 때까지 마음을 빼앗는 고목들..
죽어서도 기품을 잃지않고 서 있거나, 누워 편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 구상나무의 고사목들이 평화롭게 보인다..
일 년 중 하얀 뭉게구름으로 무대를 만들고 있늘 때가 제석봉의 제일 기분 좋은 날..
반갑다고 손을 흔들며 반겨주는 듯..화인 쌩큐..앤쥬?!
서서히 밀려 올라오는 구름.. 천왕봉에 대한 대지의 경배 같다..
아..말이 필요없는 천왕봉..신비의 세계..
산객들을 맞아주기 위해 흰 비단 옷을 바꿔입어보고 있는가?!
마치 알프스 트레킹을 하고 있는 듯..
산이 얼마나 높은 지 구름이 산을 넘지 못하고 서성거리기만 하는 것 같다..
1700m 이상의 고지에는 철쭉들의 향연..
할아버지와 손녀딸과의 대화.
지나온 제석봉 능선 길을 휘두른 운무..
4-5년전 까지만 해도 생생했던 삶을 내려놓고 이제는 자유를 즐기고 있는 고사목..
아마 저 나무는 살아있을 때에는 자기의 삶에 모든 신경을 쓰느라 저 아름다운 풍광들을 볼 여유가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드디어 천왕봉..
운무 휘두른 중봉에 까마귀들이 한가롭게 유영을 하고 있다..
아직도 봄노래를 부르고 있는 털진달래
천왕봉 정상에서..
점삼으로 컵라면, 디저트로 참외와 커피 한 잔을 느긋하게 마시며..
정상에 곱게 핀 철쭉..
정상에는 사람이 반, 까마귀 반..
하산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