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4(대청봉-오색으로)
모처럼 2박3일간 느긋하게 설악 종주를 즐겨보려고 떠났지만
세상사 모든 것이 맨날 뜻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느긋하게 걸어 가다가 공룡능선상 어디쯤에서 비박을 하려 하였지만
귀청에서 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중청 산장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난 뒤에도
계속되고 있었고, 비는 밤새 오다가 다음날 새벽에서야 그친다는 예보였다.
다행히 비는 바람없이 얌전히 내리고 있었고, 고산임에도 불구하고 기온도 급강하 되지않아
중청산장까지는 비경 아닌 비경을 즐기며 걸었지만 고어텍스 재질로 둘러쌓인
배낭 커버를 뚫고 배낭 속으로 빗물이 조금씩 스며들어와 침낭, 옷가지들을 적시고 있었다.
우리는 산을 올라가면서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법..
다음에 또 오르면 되고, 그 때문에 산은 늘 마음 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미련없이 대청봉을 거쳐 오색으로 내려와 남교리 민박에서 젓은 몸을 씻고,
삼겹살, 막걸리로 설악 등반을 반추하며 포근한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비가 오지않으면 느낄 수 없는 비경이 있다..
비에 젖을 때 단풍은 더 선명해진다..
아름다운 단풍을 휘감은 안개구름이 신비스런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벌써 떨어진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곳도 있다.
끝청 전망대를 지나며
중청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 비가 계속 내리는 바깥 날씨..
고민 끝에 오색으로 내려가기로..
흠뻑 젖은 땅 위에 비를 맞으며 텐트를 치고 하룻저녁을 보내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으니..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정상 표지석을 배경삼아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짜증나기도 하지만 힘든 산행 일수록 확실한 인증을 남기려는 것은 본능일 듯..
취사로 습이 많은 산장 취사장에서 렌즈에 맺혔던 습 때문에 사진도 엉망..
발걸음이 무거울 때는 먼 하산길도 고통이 된다..
단풍이 만들어 준 아름다운 길이 아니었으면 힘이 더 들었을 코스..
렌즈를 닦고 나서부터는 선명한 단풍들이 들어왔다..
고도가 낮아지니 단풍색도 옅어지고 있었다..
택시로 원점 회귀하여 민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역시 잔뜩 흐린 하늘..
교통체증때문에 일찍 귀가를 서둘렀다..
늘 미완은 아쉬움과 더불어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묘약이기도 하다..
존경하는 건중형, 사랑하는 후배 용선, 상일 덕분에 아름다운 설악의 품에서 가을을 품어볼 수 있었다.
세월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내가 또 다시 이런 멋진 산행을 할 수 있을까?!
에이..당연히 또 할 수 있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