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미륵사지 석탑
찬바람이 거칠게 불고 기온이 내려간데다가
미세먼지로 시계까지 희뿌연 휴일..
아름다운 봄날의 휴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장모님 장례를 모시고
간신히 심신을 추스린 아내와 곁에서 도왔던 딸이
바람을 쐬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어디론가...
어디든지...
대개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특별한 아이템이 주어지지지 않으면
정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냥 좋은 곳으로..
어디론가..
어디든지..
말은 쉽지만...
춥고, 바람이 세다.
힘드니 오래 걷는 것 사양..
미세먼지 나쁨 수준..
먼 곳은 힘들다..
그 조건들을 빼고 좋은 곳을 찾아야 한다..
뭐가 좋을까?!
산, 바다, 극장, 쇼핑, 산책...
특별한 답이 없는 것이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문득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5층 석탑이 생각났다.
왜 그 생각이 났는 지는 모르겠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예전에 가보았던 기억 없다고 하니 더더욱 좋고..
길지않은 거리 드라이브를 하여 도착한 왕궁리 5층 석탑 주변에는
마침 벚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벚나무꽃들과 5층 석탑이 잘 어우러진데다가
웅장하며 단아하고 균형잡힌 백제 전탑 형식의 5층 석탑은
가족들의 눈과 마음을 빼앗고 있었다..
왕궁리 5층석탑은
1400년 이상을 꼿꼿하게 버티어 우리를 반겨주고
1400여년 전의 기운과 혼을 전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앞만 보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역사 저 편 끝자락 세상과 만나보니
오히려 그쪽 세상이 더 아름답고 위대했다는 생각도 들게했다.
왕궁리 5층석탑의 깊은 여운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 멀지않은 미륵사지로 차를 몰았다.
인도에서 시작된 탑의 문화가 불교와 함께 유입되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꽃을 피운 곳이니
우리나라 불탑 문화의 시원이기도 한 곳이다.
먼저 전시관부터 들렀다.
고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박물관이나 이러한 전시관 여행은
나의 뿌리, 조상들의 생활을 리얼하게 만나볼 수 있어서 특별하다.
고대인들은 지금의 발달된 문명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개하고 원시적인 것 같은데
전시물들을 보고있노라면, 망치로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시절에 어쩜 이렇게...
디자인, 기술, 사고 방식 등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전혀 뒤떨어지지 않으니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보면 볼수록
그때 그들의 삶과 사고방식, 생활 수준이나 문화가
발달된 문명을 자부하는 현대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눅을 들게했다..
미륵사지에는 가운데 9층 목조탑을 중심으로 동, 서쪽에 9층 석탑이 있었다 한다.
서탑만 무너진채로 6층으로 남아있었고 목조탑, 동탑은 모두 폐허가 되었으나
동탑은 복원되었고 서탑은 복원 중이다.
지금처럼 손쉽게 일을 할 수 있는 기계, 공구들도 없이
일일히 손으로 해냈을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불가이다..
1400여년전의 조상들의 혼을 느끼며
맑고 고요해진 기분으로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