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선샤인 촬영지-일두 정여창 고택에서..
오늘은 아내와 딸의 뜻 밖의 제안에 이끌려
함양으로 길을 나섰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중
고사홍 대감 집으로 촬영된
조선조 성리학의 대가이며 동방오현 중 한 분이신
'일두 정여창'의 고택으로...
일반적으로 남성들이 여성들과의 차이점이라고 하면
드라마의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나 세심한 인간 내면의 묘사의 이해력이 부족하여
드라마를 선호하지 않고,
그저 스포츠나 뉴스처럼 단순한 구조를 좋아한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나도 드라마를 선호하지 않으니
역시 남자의 뇌구조를 가지고 있는게 분명한 듯 하다.
게다가 드라마를 보려면
일정 시간대에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야하는 점 때문에
자주 모임이나 술자리를 가져야하는 나로서는
시간을 내지 못하는 면도 있었다.
그러나 인기가 좋았던 드라마 몇 편에는 중독되어
모임 등을 피하면서 까지 봤던 기억들도 있기는 하였다.
오래된 대장금, 동의보감부터
최근의 태양의 후예, 응답하라 1988까지...
이번에도 우연히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초기에
아내의 성화에 밀려
억지로 잠깐 보고난 후로 그만 중독되어
내내 그 드라마의 포로가 되어 함께 울고 웃었으니
내가 나이를 먹어가며 노화 증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드라마의 내용이 탁월했던 것인 지...
미스터 선샤인..
조선이 망하면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묘사..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가족, 국민, 나라까지 팔아먹는 군상들이 있는 가 하면
목숨까지 내어 던지며 나라를 구하려는 의로운 사람들...
그 중 꼿꼿하고,
대의를 위하면서도 따뜻하고 사려깊은 선비이자
고애신의 조부 고사홍 대감..
툇마루에 나와 못된 자들에게 굴하지 않고
호령을 하던 그 고사홍 대감집으로 나왔던 곳이
일두 정여창 대감의 고택이다.
솟을대문을 들어가니 눈에 익은 멋들어진 고택 한 채.
드라마가 없었다면 그저 그런 고택으로 봤을텐데
드라마의 내용들이 오버랩 되면서
금방 고사홍대감, 고애신, 행랑아범, 함안댁이
웃으며 나와 맞아줄 것 같았다..
사랑채..
정여창의 호가 문헌공으로 문헌세가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연산군의 스승이면서도 무오사화를 거치며
연산군에게 유배당하고 죽은
정여창대감
자식, 집안까지 다 잃고 죽으면서도
대의와 나라 걱정을 하던
고사홍대감..
두 분 다 모든 것을 빼앗겼으나
명예와 이름 석자를 지킨 점에서
후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랑채 옆에 큰 동산을 들여다 놓은 듯 노송 한 그루가
주인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푸르름에 윤기가 감돈다..
범부채 씨앗
몇 개월에 걸쳐 주말마다
나에게 묘한 기다림과 의로운 사람들,
멋진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드라마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하늘,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듯,
시원스레 하늘로 솟은 누마루 기둥에 기대어..
사당으로 통하는 문..
절묘하게 바깥과 경계를 나누어
포근한 별세계 같게 보이도록 설계된 안채..
유진의 모가 유진을 구하고 빠져 죽은 우물이 보인다..
안채의 댓돌 위에 놓인 고무신이
한가로운 햇살 아래 여유로움을 준다..
"상여는 소박하게 하되
음식은 넉넉하게 하라..
장례는 5일간 하되
문상객은 귀천을 두지마라..
살면서 도움받지 아니한 자가 없다.."
동서고금을 털어 이보다 더 훌륭한 유언이 있었을까?!
고애신이 지냈을 별채..
견현사제 (見賢思齊)..
논어에서 이르기를
"현명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처럼 되기를 생각하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
남은 자신의 거울..
남을 비판하는 것을 비난으로 끝나지 말고,
자신을 반성하는 성찰의 시간이 되게 하라...
깊게 빚어지고 있는 솔송주..
몇 백년의 세월과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와송
목화꽃송이
대대로 빚어왔다는 솔송주..
입안에 가득해지는 솔잎향..
늘푸른 소나무를 닮은
정여창, 고사홍 대감을 생각하며 마시려고
술을 사가지고 왔다..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