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송시열과 같이 김장생의 같은 제자였던 윤선거의 아들인 윤증이 살던 고택이다.
우암과 동시대를 살면서 나중에는 소론을 이끌며 노론의 우암과 치열하게 싸웠던 것 같고
부친인 윤선거의 뒤를 이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을 쏟던 분이다.
호화롭거나 거대하지 않고 단아하면서도 기품이 있어보이던 고택이다.
우리들 조상인 선비들의 생애를 느끼다보면
너무 고지식하고, 옳고 그름이 뚜렷한 반면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하찮은 명분에 목숨을 걸고 밀고 밀리는 사생결단을 위한
학문을 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불의 앞에서는 목숨도 불사한다지만, 정작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던진 것은
승려들과 서민들이 아니었던가?!?
학문이나 크게 보면 인생 살아가는 방식에서의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찮은 것에 매달려 많은 선비들이 죽이고, 죽는 일들이 얼마나 허다하였으며
자기들의 당위성을 끌어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소모적인 정쟁을 일삼았던가?!?
현재 우리나라에 퍼져있는 사회 여러 면의 문제점들을 읽다보면
조선 시대 선비들의 생활상이 오버랩되는 것이 나만의 편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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